18장 23-33절
18장 23-33절
23.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וַיִּגַּ֥שׁ אַבְרָהָ֖ם וַיֹּאמַ֑ר הַאַ֣ף תִּסְפֶּ֔ה צַדִּ֖יק עִם־רָשָֽׁע׃
아브라함(그리스도의 예표)은 롯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선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하나님을 떠난
자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말하는 본질은 의인으로 인해서 악인이 구원받는다 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심판(샤파트)과 공의(미쉬파트)를 구분해야 한다. 심판(샤파트)는 악인을 걸러내고 의인을 구원하는 개념이다. 공의(미쉬파트)는 의인으로 인해서 악인을 구원하는 개념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천하가 구원받는 개념이다. 그래서 공의는 반드시 누군가가 심판을 대신 받게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며,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자, 세상에 살면서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지 않는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불로 태워버려서 제물(번제)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음부에서 둘째 사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둘째 사망에서 번제를 받으실 것이다.
24-26.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אוּלַ֥י יֵ֛שׁ חֲמִשִּׁ֥ים צַדִּיקִ֖ם בְּתֹ֣וךְ הָעִ֑יר הַאַ֤ף תִּסְפֶּה֙ וְלֹא־תִשָּׂ֣א לַמָּקֹ֔ום לְמַ֛עַן חֲמִשִּׁ֥ים הַצַּדִּיקִ֖ם אֲשֶׁ֥ר בְּקִרְבָּֽהּ׃
חָלִ֨לָה לְּךָ֜ מֵעֲשֹׂ֣ת׀ כַּדָּבָ֣ר הַזֶּ֗ה לְהָמִ֤ית צַדִּיק֙ עִם־רָשָׁ֔ע וְהָיָ֥ה כַצַּדִּ֖יק כָּרָשָׁ֑ע חָלִ֣לָה לָּ֔ךְ הֲשֹׁפֵט֙ כָּל־הָאָ֔רֶץ לֹ֥א יַעֲשֶׂ֖ה מִשְׁפָּֽט׃
וַיֹּ֣אמֶר יְהוָ֔ה אִם־אֶמְצָ֥א בִסְדֹ֛ם חֲמִשִּׁ֥ים צַדִּיקִ֖ם בְּתֹ֣וךְ הָעִ֑יר וְנָשָׂ֥אתִי לְכָל־הַמָּקֹ֖ום בַּעֲבוּרָֽם׃
아브라함은 롯을 의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 말씀을 두고 아브라함은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 교회는 중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하는 것이다. 다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계속 간청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를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말한다. 누가복음 11장 5-10절에서『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아나데이아 ἀναίδεια)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아나데이아는 부끄럼없이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이 중보기도라고 말을 하면서 하나님께 떼를 쓰듯이 강하게 요구하면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친구로서 말하는 것이다.
친구는 부끄럼없이 달라고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요한복음 15장
13절에서『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린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인으로 될 때까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오십인, 사십오인, 사십인, 삼십인, 이십인, 열명까지 의인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명이 없어서 멸망당한
것이다. 결국 10은 성령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오십(50)인에 있어서, 오(5)는
세상을 뛰어넘는 은혜를 상징한다. 십(10)은
말씀이다. 『은혜의 말씀을 바라는 자가 있으면, 성을 멸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같은
대답을 하신다. 은혜를 바라는 자가 누구인가?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 세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자로 비유된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자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27-28.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וַיַּ֥עַן אַבְרָהָ֖ם וַיֹּאמַ֑ר הִנֵּה־נָ֤א הֹואַ֨לְתִּי֙ לְדַבֵּ֣ר אֶל־אֲדֹנָ֔י וְאָנֹכִ֖י עָפָ֥ר וָאֵֽפֶר׃
א֠וּלַי יַחְסְר֞וּן חֲמִשִּׁ֤ים הַצַּדִּיקִם֙ חֲמִשָּׁ֔ה הֲתַשְׁחִ֥ית בַּחֲמִשָּׁ֖ה אֶת־כָּל־הָעִ֑יר וַיֹּ֨אמֶר֙ לֹ֣א אַשְׁחִ֔ית אִם־אֶמְצָ֣א שָׁ֔ם אַרְבָּעִ֖ים וַחֲמִשָּֽׁה׃
사십오(45)인에 있어서 사(4)는 세상을 상징하고, 십(10)은 말씀을 나타내므로, 『세상을 말씀으로 마치는 그 때에 오(5) 은혜를 바라는 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하셨다. 은혜를 바라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
29.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וַיֹּ֨סֶף עֹ֜וד לְדַבֵּ֤ר אֵלָיו֙ וַיֹּאמַ֔ר אוּלַ֛י יִמָּצְא֥וּן שָׁ֖ם אַרְבָּעִ֑ים וַיֹּ֨אמֶר֙ לֹ֣א אֶֽעֱשֶׂ֔ה בַּעֲב֖וּר הָאַרְבָּעִֽים׃
사십(40)인은『세상을 말씀으로 마치는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자기의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닫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도 멸하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30.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וַ֠יֹּאמֶר אַל־נָ֞א יִ֤חַר לַֽאדֹנָי֙ וַאֲדַבֵּ֔רָה אוּלַ֛י יִמָּצְא֥וּן שָׁ֖ם שְׁלֹשִׁ֑ים וַיֹּ֨אמֶר֙ לֹ֣א אֶֽעֱשֶׂ֔ה אִם־אֶמְצָ֥א שָׁ֖ם שְׁלֹשִֽׁים׃
삼십(30)인은 삼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내가 하나가 되는 자가 된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를 일컫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31.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וַיֹּ֗אמֶר הִנֵּֽה־נָ֤א הֹואַ֨לְתִּי֙ לְדַבֵּ֣ר אֶל־אֲדֹנָ֔י אוּלַ֛י יִמָּצְא֥וּן שָׁ֖ם עֶשְׂרִ֑ים וַיֹּ֨אמֶר֙ לֹ֣א אַשְׁחִ֔ית בַּעֲב֖וּר הָֽעֶשְׂרִֽים׃
이십(20)인에 대해서, 이(2)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상징한다. 10은 말씀으로,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32-33.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וַ֠יֹּאמֶר אַל־נָ֞א יִ֤חַר לַֽאדֹנָי֙ וַאֲדַבְּרָ֣ה אַךְ־הַפַּ֔עַם אוּלַ֛י יִמָּצְא֥וּן שָׁ֖ם עֲשָׂרָ֑ה וַיֹּ֨אמֶר֙ לֹ֣א אַשְׁחִ֔ית בַּעֲב֖וּר הָעֲשָׂרָֽה׃
וַיֵּ֣לֶךְ יְהוָ֔ה כַּאֲשֶׁ֣ר כִּלָּ֔ה לְדַבֵּ֖ר אֶל־אַבְרָהָ֑ם וְאַבְרָהָ֖ם שָׁ֥ב לִמְקֹמֹֽו׃
십(10)인에 대해서, 즉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그 사람도
구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람들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10은 심판의 기준이
된다. 요한복음 1장 39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두 제자가 예수를 따르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진리와 만나는
시간이 십이라는 것이다. 데카토스는 십이라는 의미 외에 열번째, 십일조라는
의미가 있다. 창세기 28장 22절에서『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아사르)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언약의 성취라는
개념다. 그래서 두 제자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이에 적용될 수 있다.
십이라는 의미는 출애굽 당시 유월절 어린양으로 말미암아 피를 칠한 자는 넘어갔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장자들은 다 죽었다. 이스라엘에서 레위인은 장자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드려진 자를 의미한다. 십일조에서 십은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십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십계명도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십에서 머문 것은 그리스도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게 소돔에서 롯을 구원하는 메시지가 된다.
베드로후서 2장 5-8절에서『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하나님이 롯을 의미으로 보는 이유는 아브라함(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인함이었다. 창세기 19장 29절에서『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롯이
자신이 스스로 의인으로 구해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의인으로 여겨지고 구원받은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보시는 의인이 하나도 없으며, 다 불에 타 죽을 자라는 것이다. 롯이
구해지는 것은 소돔에서 불에 타 죽고, 새생명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남과 같은 이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을 통해서 의인을 구하겠다는 말이다.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도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심판받은 것이다. 그래서 성령(10)을 선물로 받아 부활의 모습(새생명)으로 되는 것이다. 단순히 롯이 건져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으로 된 것을 의미한다.
친구의 개념은 야다(아는 것)하는 개념이다. 친구는 비밀이 없는 것이다. 출애굽기 33장 11절에서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