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1-8절
18장 1-8절
1.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וַיֵּרָ֤א אֵלָיו֙ יְהוָ֔ה בְּאֵלֹנֵ֖י מַמְרֵ֑א וְה֛וּא יֹשֵׁ֥ב פֶּֽתַח־הָאֹ֖הֶל כְּחֹ֥ם הַיֹּֽום׃
18장
전반부는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뀐 후에 아브라함의 후손(약속의 자녀)에 관한 이야기, 후반부는 롯의 후손(율법의 자녀)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가운데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해서 말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보이셨다. 상수리 나무는 엘을 어근으로 하는 브엘로네(בְּאֵלֹנֵ֖י),
기본형은 엘론이다. 그래서 상수리 나무는 하나님 나무라는 의미를 갖는다. 창세기 12장 6절에서
모레가 등장한다.『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그런데, 18장
1절에서는 마므레이다.
모레와 마므레의 차이에 대해서, 모레(4175)는
가르침, 이른비의 의미를 갖는다. 욥기 36장 22절에서『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모레)을 베풀겠느냐』시편 84편
7절에서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모레)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그런데, 신명기
11장 30절에서『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에발산과 그리심산 근처에 모레 상수리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에발산 그리심산은 우상을 표현한다. 나무 근처에서 점을 쳐서 가르친다는 것이다. 사사기 9장 37절에서도『가알이 다시 말하여 이르되 보라 백성이 밭 가운데를
따라 내려오고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길을 따라 오는도다 하니』므오느님은 점쟁이(거짓 선지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글 개역개정에서는 히브리어를 읽는 발음으로 그대로 번역해 놓았다.
마므레는 4754(마라)에서 유래되었다. 마라는 쓴물에서 단물로 변했는데, 그곳에서 율법의 근본 정신이 정해진
것이다. 율법의 근본 정신은 쓴물에서 단물로 바뀌는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므레는 롯과 헤어진 후 정착한 곳이다.
창세기 14장에서 롯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전쟁을 하는데, 마므레와 그의 형제들(아넬과 에시볼)과 동맹을 해서 전쟁을 했다고 한다. 마므레는 아모리 사람의 개인
소유지로 되어 있었다. 에시볼은 포도송이라는 의미다. 예수님도
포도나무라고 비유하셨다. 마므레 근처에는 헤브론(연합, 동맹이라는 의미)이 있고, 아브람이
막벨라 굴을 샀다. 그 굴에 사라가 묻혔다. 모레는 이른비, 마므레는 늦은비라고 할 수 있다.
나타나셨다 라는 말은 와예라(וַיֵּרָ֤א 기본형은 라아),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나무(상수리)에서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것이다. 『날이 뜨거울 때에』추위와 뜨거움은 말씀이 해동되지 않은 때와 말씀이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를 나타낸다. 즉 성령이 오셔서 충만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성전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거하다가 성령 충만해져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 것을 표현한 말씀이다. 아브라함이 있었던 곳은 장막(오헬) 문이다. 장막은
이후 성전이 된다. 문(페타흐)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양의 문과 같은 단어다.『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앉아 있다(요세브 יֹשֵׁ֥ב: 기본형은 야사브)는 말은 거한다는
의미다. 즉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성막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한다는 의미로 추론된다. 이때 롯은 소돔의 문에 앉아있다. 아브라함의
성전과 롯이 있는 바벨탑과 비교를 한다.
2.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וַיִּשָּׂ֤א עֵינָיו֙ וַיַּ֔רְא וְהִנֵּה֙ שְׁלֹשָׁ֣ה אֲנָשִׁ֔ים נִצָּבִ֖ים עָלָ֑יו וַיַּ֗רְא וַיָּ֤רָץ לִקְרָאתָם֙ מִפֶּ֣תַח הָאֹ֔הֶל וַיִּשְׁתַּ֖חוּ אָֽרְצָה׃
1절에서는 여호와가 나타나셨는데, 여기는 사람 셋이라고 표현했다. 창세기 19장에서 두 사람은 천사로 표현된다. 1장 3절에서는 내 주(단수)여 라고 표현하는데, 4-5절에서는 당신들의 발을 씻고 에서 복수로
나타낸다. 그래서 한 사람은 여호와의 사자(말라크)로 볼 수 있다. 멜기세덱과 같은 그리스도의 개념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셋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표현된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역사하시기
위해 셋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셋으로 동시에 각각 역사하신다.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영접하는 것에 대해서 히브리서 13장 1-2절에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이들은 아브라함과 롯을 의미한다. 아브라함과 롯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대접하였지만, 그들은 천사였다고
말을 한다. 손님은 헬라어는 크세니산테스 ξενίσαντες, 기본형은 크세니죠이다. 크세니죠는 나그네, 낯선 이방인 등의 의미를 갖는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크세노스)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해서 나그네라는 의미다. 세상
사람들이 나그네를 핍박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영광의 보좌가
심판의 백보좌이다. 그래서 양과 염소로 나뉜다. 양과 염소는
제물로 표현되는데, 양(오른편)은 제물이 되어 지성소로 가는데, 아사셀 염소(왼편)는 광야로 간다. 오른편은
하나님의 오른쪽이다. 왼편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모습이다. 25장
35절에서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다』고
한다. 부지중에 영접했다고 한다. 부지중에 손님 대접한 자는
아브라함이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소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소돔 사람들은 마태복음 25장 46절에서 처럼 심판을 받았다. 나그네는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땅에 굽히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의미도 있지만, 인간은 땅에 속하는 존재이고, 하나님이 땅에 말씀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3-4.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וַיֹּאמַ֑ר אֲדֹנָ֗י אִם־נָ֨א מָצָ֤אתִי חֵן֙ בְּעֵינֶ֔יךָ אַל־נָ֥א תַעֲבֹ֖ר מֵעַ֥ל עַבְדֶּֽךָ׃
יֻקַּֽח־נָ֣א מְעַט־מַ֔יִם וְרַחֲצ֖וּ רַגְלֵיכֶ֑ם וְהִֽשָּׁעֲנ֖וּ תַּ֥חַת הָעֵֽץ׃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히브리어
원어를 통해서 재번역하면,『 וַיֹּאמַ֑ר אֲדֹנָ֗י אִם־נָ֨א מָצָ֤אתִי חֵן֙ בְּעֵינֶ֔יךָ
내가 당신의 눈 안에 은혜를 발견했습니다.』라는 말씀이다. 노아도 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고 표현한다. 이브라함은 노아와 연계된다. 노아는 홍수로서 세례를 말하고 있으며, 아브라함은 할례로 세례의 의미를 말한다. 세례나 할례는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의미를 갖는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발을 씻는 것은 시몬의 집에서 향유를 부은 여인(마리아)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녀가 한 행동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나무 아래에서 쉬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에게 대속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나무에 의지하여 있으라는
것이다. 장대에 높히 들린 인자를
바라보고 인자 안에 있는 자는 모든 죄가 사해졌음을 의지하라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예수님과 함께 율법에 의해 이미 나무에 달린 자가 되는 것이다. 신명기 21장 23절에서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5.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אֶקְחָ֨ה פַת־לֶ֜חֶם וְסַעֲד֤וּ לִבְּכֶם֙ אַחַ֣ר תַּעֲבֹ֔רוּ כִּֽי־עַל־כֵּ֥ן עֲבַרְתֶּ֖ם עַֽל־עַבְדְּכֶ֑ם וַיֹּ֣אמְר֔וּ כֵּ֥ן תַּעֲשֶׂ֖ה כַּאֲשֶׁ֥ר דִּבַּֽרְתָּ׃
떡은 소제의 예물로도 사용된다. 성소에 진설병을 의미하며, 율법을 상징한다. 율법에서 이미 죽어, 말씀으로 하나님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될 때까지 기대하고 계시기를 바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구약에서 율법을 통해서 죄인임을 깨닫고,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고백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6.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וַיְמַהֵ֧ר אַבְרָהָ֛ם הָאֹ֖הֱלָה אֶל־שָׂרָ֑ה וַיֹּ֗אמֶר מַהֲרִ֞י שְׁלֹ֤שׁ סְאִים֙ קֶ֣מַח סֹ֔לֶת ל֖וּשִׁי וַעֲשִׂ֥י עֻגֹֽות׃
떡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한다. 고운 가루만 표현되어
있는데, 원어에는 거친 가루도
포함되어 있다. 고운 가루는 소제로
드릴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레위기 2장 1절에서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고운 가루는
부숴지고 갈아져서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 자의 모습이다.
즉 이전의 것은 죽었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처럼, 죽어야만 모든 죄가 사라지는 것이다.
세 스아는 세 컵과 같은 계량형 단위다. 삼이라는 말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떡(히브리어 우가)은
둥근 떡을 상징하는데, 성전의 떡상에 진열된 12개의 떡 중 하나(키카르)를 의미한다. 이 키카르를 아브라함이 만드는 것이다. 만든다는 것은 말씀을 이룬다는 의미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하나가 되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7.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וְאֶל־הַבָּקָ֖ר רָ֣ץ אַבְרָהָ֑ם וַיִּקַּ֨ח בֶּן־בָּקָ֜ר רַ֤ךְ וָטֹוב֙ וַיִּתֵּ֣ן אֶל־הַנַּ֔עַר וַיְמַהֵ֖ר לַעֲשֹׂ֥ות אֹתֹֽו׃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말한바, 사라가 이삭을 낳았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아버지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기름지고(라크) 좋은 송아지(선한 토브)』에서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8.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וַיִּקַּ֨ח חֶמְאָ֜ה וְחָלָ֗ב וּבֶן־הַבָּקָר֙ אֲשֶׁ֣ר עָשָׂ֔ה וַיִּתֵּ֖ן לִפְנֵיהֶ֑ם וְהֽוּא־עֹמֵ֧ד עֲלֵיהֶ֛ם תַּ֥חַת הָעֵ֖ץ וַיֹּאכֵֽלוּ׃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엉긴
젖과 우유는 성부를 의미한다. 어미 소에서 젖이 나오는 것이다. 송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고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친구같이 하나가 되는 장면이다.
고운 가루로 떡을 만들고 송아지를 잡고 먹는
의미는 마치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영접의
모습이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에서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들러 음식을 대접받는 일을 설명한다. 마르다는 음식 준비하는데, 분주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 앞에서 설교를 듣고 있었다. 마르다가 언짢아서
예수님께 항의성 발언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가지를 하라는 것이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다고 말씀을 하신다.
천사는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이다. 천사를 부지중에 영접하는 것은 복음을 받아드리는 자가 제대로 된 영접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에 대해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을 하신다. 마리아는
히브리어로 미리암이고, 미리암의 어근은 마라이다. 쓴물에서
단물로 바뀐 의미를 갖는다. 마라에서 마므레가 등장한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서 설교를 듣는 것이나,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하는 것은 같은 이치인 것이다. 오늘날 참 복음을 듣는 것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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